2007. 4. 5. 20:56

우동군의 주장대로 족발을 시켜먹었는데, 여섯쪽인가 먹고 속이 울렁울렁거린다. 남은양이 절반이상이라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하나 싶어서 네이버에 물어봤다.

'남은 족발'로 검색하니 주루룩...

역시 나만이 아니였다. 남은 족발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 히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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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ha
2007. 4. 5. 08:05

멸치, 말린 표고, 다시마.

냄비에 적당량의 물을 넣고 위 재료를 넣은 다음에 한번 끓여주면 끝!
걸리는 시간은 물의 양에 따라 다르지만 5-10분 사이가 된다.

잔치국수, 칼국수와 같이 육수만으로 국물맛을 낼 때는 넣어주는 양을 좀 많이 해주고, 된장국 등의 다른 첨가물에 의해 맛을 낼 때는 1/2~1/3 정도의 분량만으로 끓여도 된다.

진한 맛을 낸다고 오래 끓이면 씁쓸하고 비릿한 맛이 나니 주의.


취향에 따라, 양파, 대파 등을 넣어 같이 끓여도 된다.


Posted by seha
2007. 4. 4. 22:07

하루 종일 찝찝했다. 뭔가 개운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이유는 아래 포스팅에 적은 사건에 대한 애매모호한 내 태도 때문이였다. 물론, 나는 아직 결론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누구 한 쪽의 편을 들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 비판을 내 성격만큼 신랄하게 하지 못한 것이 둥그스레 돌려 빗댄 것이 내 마음을 콕콕 찔러대고 있었다.

실은 이런 마음을 알면서도 내내 모른 척 감췄다. 찝찝함을 그냥 일상의 변덕쯤으로 누르려 했는데, 좀전에 설거지를 하다 그만 소설 하나가 떠올랐다.

마차를 타고 도망 탈출 혹은 망명하던 이들이 중간에 군인을 만나고 그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마차 안에 있던 매춘부를 강제적으로 군인과 자게 한 뒤 매춘부를 벌레보듯 보는 그런 소설이였다.

제목이 기억이 나지 않아 진주목걸이인가 했는데, 그건 모파상의 '목걸이'라는 소설이였다. 좀 더 생각해보니 '비계덩어리'라는 제목의 모파상 중편 소설이였다.

기억에 의하면 고등학교 때 처음 이 작품을 접하고 마차에 타고 있던 귀족을 위시한 남자들을 싸잡아 욕했던 그런 감상문을 적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 표독스러움은 대학 때까지도 유지되었던 것 같다. 직업을 가지고 당신들을 위해 희생한 한 여성에 대해 감사는 커녕 그런 취급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당신들이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는 약자가 아닌가라는 식의 감상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그랬다. 앞뒤 재지 않고 쏘아붙이고 있는 그대로 내뱉었다. 대학 1학년 때는 동호회 세미나 중 한 친구의 작품을 흔들며 이것도 시냐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참 우스운 일이였다. 그러는 내 것은 시였던가. 여하튼 그때는 그랬다. 비난과 안티와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의견을 분명하게 표시할 줄 알았다.

지금 내가 비계덩어리를 읽는다면, 나는 또 다른 감상을 적을 것이다. 그래야만 하는 그 매춘부를 제외한 이들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척 적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잘못했다는 말 역시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기에 이해할 수 있다는 말도 적을 것이다.

내가 오늘 적은 포스팅이 그랬다.
나는 비겁했다.

나의 정의와 나의 선은 비계덩어리의 매춘부와 같지만 현실의 나는 마차 안의 매춘부의 피와 살을 주워먹는 귀족과 다를 것이 없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며 그 우위에 선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점점 소심한 겁쟁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나는 내가 좀 더 유한 사람이 된 줄 알았다. 전처럼 모가 난 뾰족한 가시가 아니라 둥글게 살아가며 타인을 껴안을 줄 아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할 말을 목으로 삼키며 타인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자기 관리만 해대는 그런 어른이 되어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과장되었으며 극단적인 평가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여전한 것은 내 안에 위선과 가식이 조미료 마냥 내 혀끝에 남아 온 종일 날 찝찝하게 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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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ha
2007. 4. 2. 21:00

뭐 컴퓨터 트레이 창에 언제나 시계가 있지만서도, 그래도 새로운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 블로그에 붙여보았다.

http://www.clocklink.com/ENG/gallery_digital.htm

여기 가면 예쁜 시계들이 많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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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ha
2007. 4. 2. 09:14

어제 잠깐의 외출 동안에 얼굴을 울긋불긋 도돌도돌 뭐가 생겼고, 목은 칼칼 아파온다.

이번 봄은 황사가 예년보다 적을 것이라는 뉴스를 본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러니 믿지 말까보다. -.-;

외출 후 손을 깨끗하게, 세수도 쓱싹.

다들 황사 조심하길... 콜록콜록
Posted by seha
2007. 4. 2. 09:09

가끔 책을 읽고 간단한 글을 올릴 때 가급적 줄거리를 쓰지 않는다. 까마귀 고기를 날마다 집어삼키는 나인지라 시간이 지나면 읽었나 말었나 내용은 가물가물, 책 제목도 가물가물해서 이왕이면 내용을 적어놓는게 편하지만, 일종의 스포일러가 되버리는 셈이기 때문에 간단하게 책표지에 적힐 정도의 내용만 적는다.

근래에 자꾸 독후감으로 검색해서 오는 사람들이 있다. 방문객 많아지면 나쁠 것도 없지만서도, 왠만하면 책 한권 정도는 읽어주는게 좋지 않은가? 중고등학생은 아닌 것 같고, 대학생쯤이지 않나 싶은데, 2시간만 투자하면 충분히 읽을 책들을 웹서핑하는 모습이 참 답답하다. 어차피 내 인생과 무관한 사람이겠지만, 책을 읽는다는 것이 하루 30분만이라도 이에 투자한다는 것이 이후 얼마나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어째 최근에는 안타깝고 갑갑한 일이 이리 많은지.

대학 때, 우리 학교는 고등학교에 맞먹는 독후감 숙제가 2학년까지 필수교양이였다. 2주에 한번 정도는 꼭 독서감상 토론수업이 있었고 이게 4학기 동안 필수코스였으니 실제 많이들 속터졌을 것이다. 대학까지 와서 무슨? 이라는 생각을 했을테니. 솔직히 나도 그 때 그 책들을 다 읽지는 않았다. 놀기 바쁜 시절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토론 수업에서 한마디 안한 날이 없었던 것은 그 당시 읽지 않았을 뿐이지 90%이상이 이미 읽었던 책이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3학년되니 이 수업이 괜히 듣고 싶어 후배들 틈에 끼어 들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재수강을 할 수 없어서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세대 역시 그다지 책과 친근한 세대가 아닌지라 이런 강제적인 책 읽기가 그나마 대학생활에서 문학과 사회를 접하게 해준 유일한 통로가 아니였나 싶다. 솔직히 요새 누가 책을 읽는가.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도 한달에 한권의 책이라도 보는 사람이 드물 지경이니 책이 멀기는 참 먼가 보다.


여하튼간에 아마 차후에 책을 보고 글을 쓴다면 더 간단한 줄거리가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독후감 정도는 좀 읽고 씁시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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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ha
2007. 3. 30. 08:24


이야기 파는 남자 | 원제 Sirkusdirektorens Datter
요슈타인 가아더 (지은이), 박종대 (옮긴이) | 이레 |
ISBN 89-5709-059-2 03890 | 2005. 10. 25.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낚인 책이다.

표지에 적혀있는 글에는 분명 이런 말이 있었다.
'전 세계 베스트셀러를 둘러싼 충격적인 뒷거래 이야기!'
순진하게도 나는 이 글을 보고는 이 책이 실화를 배경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소설인지 알았다. 하.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전에 너무도 읽히지 않는다며 적은 이 책은 읽는데 꼬박 5일이 걸렸고, 그마저도 정독이 아닌 날림으로 읽은 책이다.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예전에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읽을 때도 이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었다. 내가 아는 것들을 여지없이 추락시켜버리는, 그런 느낌에서인지 완강하게 머릿속에서 거부하고 있다. 아마 그건 책과 소설을 두고 불유쾌한 이야기를 풀어가기 떄문일 것이다. 왜냐면 똑같이 소설을 들고 이야기하는 '제인 에어 납치사건'은 너무 재미있게 봤고 추천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기발한 소설적 상상력에 놀랐었는데, 과연 이 책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결국 이 책을 다 읽고 술을 한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름다운 동화, 혹은 슬픈 동화 등의 액자소설들과는 너무도 다른 본소설의 이야기.
이야기꾼과 소설가, 그 둘의 차이를 이야기하자면 구성의 허술함과 완벽함에 있다고 보고 싶다. 단순한 이야기라는 것은 듣고 지나가며 그럴 수도 있지라는 이해를 전제로 시작되고 경청되어지지만 소설은 구성에 있어 허술함이 있다면 비판하며 읽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의 이야기꾼 주인공은 수많은 이야기를 지어내지만 단 한편도 소설화하지 않고 창작물을 파는 즐거움에 빠져있다. 창작물의 거래가 문제시 될 것은 없지만, 마치 태생이 숨겨진 훔쳐다 키운 아이로 작품을 발표하는 소설가들이나 자신의 아이를 내다 팔아 부를 누리는 이야기꾼은 분명 도의적 책임과 양심의 꺼리낌은 있어야할 것이다. 페테르는 분명 그런 마음이 없었다.

결국 결말은 끔찍했다. 거미가 줄을 치다가 자신의 새끼를 잡아먹은 꼴을 하고 있다.


좋은 소설이라 수많은 사람들과 비평가가 이야기하여도, 내게 와닿지 못하고 겉돌게 된다면 내게는 그게 좋은 소설일 수 없다. 그래서 저마다의 취향이 있고 저마다의 애장서가 다 다른 것이다. 근래에 와서 드는 생각은 창작자가 가진 의도를 빗겨서 그 창작물을 접한 사람이 인식한다면 누구의 잘못인가이다. 수없이 많이 밑줄을 그어가면서 반복적으로 익혀왔던 문학의 접근 방식을 이젠 내 스스로 버릴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화자가 이야기하는 것, 그것을 굳이 내가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아도 내게 느껴지는 그것이 바로 내 책읽기가 아닐까.

그나저나 권해준 사람에게는 뭐라 해야하지? '그 책 전 별로던데요?'
Posted by seha
2007. 3. 28. 20:43

가끔 음악을 들으러 네이버를 들어가면 난 이상하게 배경음악이 안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설치 버튼을 눌러도 activex가 뜨지 않는다. 하다못해 누구 말 듣고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도 실행시켜보고, windows\download\programfiles 밑의 shockwave외의 모든 파일도 삭제해봤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음악은 안나왔다.


이제 그 이유를 알았으니 바로 NO-AD1의 문제였다.

과거 잠시 노애드를 이용했을 때 기본 설정 그대로 썼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 차단된 activex의 리스트들이 그대로 시스템상에 남아 있었던 것이였다. regedit을 실행해서 관련 항목을 모두 삭제하였으나 실패했고 결국 no-ad1을 깔아서 차단된 사이트를 전부 해제해주고 언인스톨 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프로그램 하나, 정말 이렇게까지 시스템을 건들여놔야하는가 생각이 든다.
이래서, 윈도우가 싫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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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ha
2007. 3. 26. 13:18

이번 부산여행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 여행이였다.

먹은 나이만큼 어른스럽지 못한 나와 그런 나를 걱정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
그리고 조금의 복잡한 고민과 마음을 가졌던 ...

부산에서 만났던 요꼬님, 할라님. 그냥님, 씨엔군, 삥님, 그리고 아라치님과 젤 모두 반가웠다는...

어제는 앙신이 녀석 라인댄스 공연이 장통교에서 있다고 해서 가봤다. 땀을 삐질삐질흘리며 그 추운 바람 속에서 열심히인 녀석을 보니 나도 라인댄스가 하고 싶어졌다. 흔들흔들 경쾌한 음악에 시원한 동작들.... 아~ 해 말아? 근데 창피하단 말이다. 일요일 7시부터 9시 30분까지 혜화 1번 출구방향이라는데.. 고민고민...


요새 읽고 있는 책이 진도가 잘 안나간다.
이상하게 책에 관련된 소설을 쥐게 되면 잘 안읽혀지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내가 정의내린 책과 소설을 여지없이 부셔버리는 것들에 대한 방어막이 아닌가 싶다. 이번에 읽고 있는 책은 '이야기 파는 남자'인데, 껍대기에 붙어 있는 팜플렛을 보고 전혀 다른 류의 내용이라 상상했다가 읽어가면서 좌절중이다.


피로가 풀리지 않아서 뭐든 건성건성...
세가지 글을 써야할텐데 주절주절로 한글에 대충~ 쓰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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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ha
2007. 3. 23. 00:00


용의자 X의 헌신 - 제 134회 나오키 상 수상작 | 원제 容疑者Xの獻身 (2005)
히가시노 게이고(지은이), 양억관(옮긴이) | 현대문학 |
ISBN 89-7275-369-6 03830 | 2006. 08. 10.


늘 틀에 박힌 내 취향의 책만 읽다가 모든 것이 귀찮아지면 주변인의 추천을 받거나 서점에서 잘나가는 책을 골라 읽거나 새로나온 책 중 아무거나 집어들기도 한다. 이 책은 온라인 서점의 배너광고를 보고 주문한 책이다.
실제 일본 작가의 추리소설은 초등학교 때 너무 충격적으로 읽은터라 그 뒤로 손을 댄 적이 없었다.

다른 추리 소설과 다르게 이 책은 살인자의 살인 묘사를 시작으로, 누가 범인인가를 밝히고 범인을 위해 희생하는 한 사람과 형사, 그리고 우연히 개입하게 된 또 다른 천재 동창생 사이의 심리전을 그린 추리소설이다. 결국 범인되신 희생하는 한 사람이 있기에 '용의자 X의 헌신'이라고 한 줄 알았다. 그냥 그런 지루한 사랑이야기?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이야기는 반전되었고, 나는 솔직히 울 수 밖에 없었다. 사랑의 숭고함, 뭐 그런 것이 아니라 용의자 X에 대한 연민과 그 헌신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저지르지 않은 죄를 대신해서 받는다는 것과는 너무도 다른, 인간이기를 버리면서까지 지키고 싶은 마음.

복잡하다. 사랑, 살인. 하나는 무엇이든지 용서할 수 있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말이다. 그 두 말이 이 소설에는 공존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읽고난 심정이 갑갑하고 복잡한 것이다.

나는 이 밤 용의자 X의 사랑을 비난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 그래서 애매한 연민만 가진채 눈물지을 뿐이다.



왜 그에게 외로움을 알게 하였는가, 혼자인 사람은 외로움을 몰랐을 것인데....


Posted by se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