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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04 위선과 가식, 그 찝찝함 2
2007. 4. 4. 22:07

하루 종일 찝찝했다. 뭔가 개운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이유는 아래 포스팅에 적은 사건에 대한 애매모호한 내 태도 때문이였다. 물론, 나는 아직 결론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누구 한 쪽의 편을 들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 비판을 내 성격만큼 신랄하게 하지 못한 것이 둥그스레 돌려 빗댄 것이 내 마음을 콕콕 찔러대고 있었다.

실은 이런 마음을 알면서도 내내 모른 척 감췄다. 찝찝함을 그냥 일상의 변덕쯤으로 누르려 했는데, 좀전에 설거지를 하다 그만 소설 하나가 떠올랐다.

마차를 타고 도망 탈출 혹은 망명하던 이들이 중간에 군인을 만나고 그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마차 안에 있던 매춘부를 강제적으로 군인과 자게 한 뒤 매춘부를 벌레보듯 보는 그런 소설이였다.

제목이 기억이 나지 않아 진주목걸이인가 했는데, 그건 모파상의 '목걸이'라는 소설이였다. 좀 더 생각해보니 '비계덩어리'라는 제목의 모파상 중편 소설이였다.

기억에 의하면 고등학교 때 처음 이 작품을 접하고 마차에 타고 있던 귀족을 위시한 남자들을 싸잡아 욕했던 그런 감상문을 적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 표독스러움은 대학 때까지도 유지되었던 것 같다. 직업을 가지고 당신들을 위해 희생한 한 여성에 대해 감사는 커녕 그런 취급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당신들이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는 약자가 아닌가라는 식의 감상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그랬다. 앞뒤 재지 않고 쏘아붙이고 있는 그대로 내뱉었다. 대학 1학년 때는 동호회 세미나 중 한 친구의 작품을 흔들며 이것도 시냐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참 우스운 일이였다. 그러는 내 것은 시였던가. 여하튼 그때는 그랬다. 비난과 안티와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의견을 분명하게 표시할 줄 알았다.

지금 내가 비계덩어리를 읽는다면, 나는 또 다른 감상을 적을 것이다. 그래야만 하는 그 매춘부를 제외한 이들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척 적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잘못했다는 말 역시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기에 이해할 수 있다는 말도 적을 것이다.

내가 오늘 적은 포스팅이 그랬다.
나는 비겁했다.

나의 정의와 나의 선은 비계덩어리의 매춘부와 같지만 현실의 나는 마차 안의 매춘부의 피와 살을 주워먹는 귀족과 다를 것이 없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며 그 우위에 선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점점 소심한 겁쟁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나는 내가 좀 더 유한 사람이 된 줄 알았다. 전처럼 모가 난 뾰족한 가시가 아니라 둥글게 살아가며 타인을 껴안을 줄 아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할 말을 목으로 삼키며 타인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자기 관리만 해대는 그런 어른이 되어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과장되었으며 극단적인 평가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여전한 것은 내 안에 위선과 가식이 조미료 마냥 내 혀끝에 남아 온 종일 날 찝찝하게 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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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