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홍대근처 합정역쯤)에 면짱이라는 면 음식점이 생겼다.
나야 면이라면 좋아 죽을만치 좋아하니 자주 가려고 마음 먹은 곳이다.
한달 전 쯤에 갔을 때는 종일 밀가루를 섭취한터라 어쩔 수 없이 밥을 먹었고 오늘은 벼르고 별러 잔치국수를 먹었다. 보니 국물은 다 동일하고 토핑에 따라서 달라진다길래 기본부터 먹어야겠다 싶었다. 같이 간 꼬맹이는 면은 안된다라는 말에 제육덮밥을 골랐다.
뭐 국수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국물도 짠 편은 아니고 텁텁하지도 않고 깔끔하게 잘 나왔다. 맛있다기 보다는 그냥 그 가격에 그랬다. 찾아올 맛은 아니다.
문제는 밥이였다.
체인점을 내겠다는 곳에 즉석조리를 기대한 것은 잘못이었을지 몰라도 최소한 기존에 조리된 음식이 나왔다면 제대로 최소한 즉석조리처럼 보여져야할 것 아닌가?
꼬맹이가 시킨 제육덮밥은 고기가 사이좋게 나란히 붙어 있었다. 딱 보기에도 '난 제대로 전자렌지에 돌리지 않아 붙어있는 중이에요'라고 써 있는 듯 보였고, 그래서 아이가 먹기 전에 내가 한 입 먹었는데 생각대로 차가웠다.
이걸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종업원에게 차갑다고 말을 했더니 가져갔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뭔가 조리/홀서빙 사이에 말이 오고가는거 같았고, 기다리니 음식이 다시 나왔다.
사실 차가운 것을 들여보내면서 이거 접시째 전자렌지에 돌리려나? 그럼 안의 날치알은 어떻게 되지? 이런 걱정을 했는데 다행인지 접시째 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접시 안의 다른 내용물을 제외한 밥과 제육부분만 다른 접시에 쓸어넣었던 흔적은 고스란히 있었다. 아니 흔적까지는 괜찮았다. 접시를 타고 줄줄 흐르는 제육 양념.. 어쩌자는건지? 뜨거워야할 음식 차갑게 나온게 손님의 죄인가? 접시 위에 흐트러진 밥모양은 어차피 배에 들어갈 것이니 이해할 수 있지만 줄줄 흐르는 접시는 용서가 안됐다.
성격대로라면 화를 내고 그냥 나왔을텐데 그냥 먹었다. 다시는 내 여기 안오리라 생각하고.
아침부터 여러가지로 화가 나 있어서 생각 이상으로 타인에게 열내서 따질 것 같아서 조용히 먹은 것이다. 덕분에 소화도 안되고 배는 아프다.
면짱. 다시는 안가주겠다. 내년에 지하철마다 분점낸다던데 잊지않고 안가주겠다.
씨젠도 한 4년전에 떨어뜨린 컵 그대로 물마시라고 갖다주는 꼴보고 안갔다. 체인점을 하고 싶으면 본점부터 잘해줬음 한다. 본점이 이 정도면 체인점은 어떻게 가는가?
요새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는지 혹은 읽지 않는지 '한 도서관 한 책 읽기'라는 운동을 하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이달의 추천 도서가 '완득이'란다.
시간들이는 책을 읽지 않아서인지 이전처럼 쉽게 책이 읽혀지지 않는 시점에 이 책은 정말 쉽게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었다. '창비 청소년 문학'이라는 타이틀이 걸려 있어서인지 중학생이면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체였다.
그런데, 이 책, 나는 왠지 잘 기획된 청춘드라마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난쟁이 아버지, 혈연관계는 없는 정신지체아 삼촌, 그리고 어머니 얼굴도 모르는 완득이.
멀리서 밥 굶기 싫어 와 집나간 베트남 어머니.
입에 욕을 달고 사는 담임 똥주.
내 보기엔 완득이랑 비슷한 정신세계의 혁주, 그리고 완득이의 매니저를 자처하는 1등 정윤하.
어렵고 어려운 환경이야 80년대나 지금이나 있을 수 있지만, 'Great.Teacher.Onizuka(G.T.O)'-반항하지마!에나 나올법한 똥주라는 캐릭터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가 지극히 정상적인 여학교를 나온 탓인지 몰라도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교사란 캐릭터는 현시대 설정에는 정말 맞지 않을 법 했다.
게다가 킥복싱.
제 1회 창비 청소년 문학상(2007년)을 받은 작품이라면 2007년도 소설인데 너무 구태의연한 설정이 아닐까. 배고픈 아이들이 복싱하던 시기는 지나지 않았나 싶다. 더 이상 복싱이 국민 스포츠라 불리며 챔피언 메달 달고 가난을 한번에 K.O 시키는 스포츠는 아니니 말이다. 여하튼 완득이는 킥복싱을 한다.
게다가 믿도 끝도 없이 '너만은 아닐꺼야'라며 메달리는 반 1등 모범생 정윤하와의 어정쩡한 러브라인. 딱 고등학생 수준이라 보이기엔 좋지만, 성적은 바닥을 기고 주먹질을 하는 남자아이에게 '너만은 아닐꺼야'라는 환상을 가지는 여자아이는 얼마나 될까?
여하튼 완득이는 어려운 가정 환경과 욕을 입에 달고 살지만 어려운 학생을 배려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개념박힌 부자집 아들인 담임을 만나서 주위를 둘러보게 되고 생각도 못한 어머니를 만나며 반 1등하는 여자친구도 생기게 된다. 그리고 킥복싱을 통해서 싸움과 운동의 차이를 느끼며 킥복싱을 열심히 하게 된다. 여기서 딱! 완득이가 킥복싱 챔피언이 되면 완벽한 청춘드라마다. 아쉽게 TKO로 세번의 경기를 모두 지지만 말이다.
내가 어릴 적에도 청소년 문학이라는 것이 있었고, 읽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감동했고, 바른 길을 배웠으며,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내가 만약 청소년 시기에 이 책을 만났다면 나는 또 눈물 지으며 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접할 청소년은 8/90년대의 청소년을 보내던 내가 아니라 2000년대 후반을 가로지르는 아이들이다. 그래서 아무리 봐도 아쉽다.
책이라는 것이 물론 자신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혀지는 것이다. 어쩌면 내 생각과 달리 이 시대의 청소년들 역시도 이 책에 감동받고 동화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굳이 권하는 책에서 나와야 할 '감동적이다'라는 문구의 독후감을 나는 써주지는 못한다.
그저 잘 기획되고 잘 만들어진 소설, 그 이상의 것은 내게 주지 못한 소설이 아니였나 싶다.
쓰고보니 너무 악평을 했나.
뭐 앞 뒤 다 자르고 분명한 것은 쉽게 잘 읽힌다.
그런데 추천은 못하겠다.
잘 읽고 추천 못하겠다니 참 심술궂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