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 1. 20:00

친구가 며칠 전부터 분주하다. 만렙도 아니고 64짜리 캐릭터를 가지고 분주히 움직인다. 때로는 같이 인던에 놀러 가자고 해도 바쁘다고 한다. 해야할 일이 있다더니 재봉을 올리는 모양이다.

옷감 좀 줄까 하는 물음에 이미 다 준비해놨단다. 그래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오늘 갑자기 경매장에 옷감이 없어서 더 살 수 없단다. 다 준비해놓은게 골드로 경매장에서 지르는 일이였던거다. 그래 부랴부랴 가진 옷감 챙겨보내줬는데 숙련 올리는데 실패했다고 울길래 다시 또 보내고 결국 포탈 여느라 옷감 주느라 이 캐릭터 저 캐릭터 내내 오고갔다. 좀 번거롭긴 했지만, 뭐 급하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친구가 좀 안되어 보였다.

가끔 그럴 때가 있는게, 나도 오늘 뭔가를 해야해 하고 마음 먹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고 안될까봐 불안해지고 날카로워지곤 한다. 오늘 못할까봐 안달이 나는 것이다.

친구도 그러려니 했다. 결국 이래저래 모아모아 준 옷감이 대충 숙련 올리는데 도움이 되었나보다. 대충 180장 240장 113장 부캐릭터에 붕대 올리려고 모아놨던거며 싹 긁어 줬으니 꽤 많이 주긴 했다. 아까운건 없다. 어차피 팔 것도 아니니까.

고난의 거리 마나 베틀 옆에서 녀석의 375 재봉 숙련 올리는 것을 지켜봤다.

친구 : 다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거래창이 열리는거다.

칠흑의 암흑 가방

28칸짜리 영혼의 조각을 넣을 수 있는 가방이다. 예전에 20칸짜리 가방이 너무 비좁아서 아는 사람에게 28칸짜리 가방 재료를 문의했던 적이 있고, 재료가 너무 비싸서 포기했었는데, 그걸 듣고 친구가 만든 거였다.

친구 : 재료는 있었는데, 그럼 내 이름이 안뜨잖냐. 볼 때마다 내 생각해라.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게임 상에서의 아이템 현실에서는 별게 아니긴 한데, 게임이지만 정성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재료 중 하나는 4일마다 한번씩 변환해야 하는 옷감이 있었고, 그리고 재봉 숙련이란 것 역시 만만치 않아서 꽤 오랜 시간 작업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걸 이름 새겨 주고 싶어서 12일을 쿨타임 맞춰서 옷감 변환하고 숙련 올리면서 혼자 끙끙댔던 것이다.

반년 넘게 쓴 호밀의 20칸짜리 가방이 다른 한구석에 놓이고 28칸짜리 가방이 들어왔다.

고맙다는 말로도 참 부족한 일.
내가 해줄 것을 찾아보는데, 나는 참 게으르고 부족한 사람이라 늘 줄 것이 없다. 고작 기본 마부와 연금 정도인데, 요새는 누구나 다 하는 기본이라 별 도움이 못되는게 아쉽다.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정말 내가 해줄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은 너무 미미한 것들이기에 미안하기 때문이다. 많이는 못줘도 받은만큼은 주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고민이다.


사람들은 내게 인벤을 뭘로 채우길래 늘 그렇게 모자르냐 묻는다.
내 가방에는 언젠가 아는 동생이 파템이라 들려줬던 14레벨짜리 마법봉도 자리하고 있고, 선물받은 기공템과, 여러 펫들과, 때로는 웨딩드레스니, 셔츠니 그런 것들로 가득차 있다. 어떤 제작템은 계정을 삭제해서 제작자 이름이 지워져 있다. 어떤 것은 더 이상 쓸모가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내 안에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버릴 수 없는 물건들이다. 그래서 내 가방은 늘 꽉 차 있다.

야, 고맙다. 내가 나중에 좋은 마부 하나 배워서 해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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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ha